이제 진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방법
우리가 쓰고 싶은 건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이다.
모든 고뇌는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힐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쓰고 싶은 글은 실제로 읽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도 상관 없는 글이 아니다. 우리가 쓰고 싶은 글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 그리고 기왕이면 잘 썼다, 좋은 글이다, 칭찬도 듣는 글이다.
동료들과 그런 얘길 나눈 적 있다. 왜 글은 특히 더 발가벗은 듯 내 속내를 전부 들키는 기분이 들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의 사고방식, 가치관, 성격, 그리고 여기 이 대목을 쓰면서 얼마나 자기 자신을 우쭐해했는지도 간파하고 만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쓴 글에서 나의 면면을 간파하겠지, 하는 생각에 우리는 그만 두려워지는 것이다.
솔직히 그런 걸 걱정할 입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제 진짜 드디어 이번에는 진심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읽는 건 아니다. 나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한때는 되고 싶었던) 40 under 40 같은 것도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든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내가 링크드인에 포스트 하나 올린다고 네이버 홈에 올라가겠나, 주요 일간지랑 인터뷰를 하겠나, 유퀴즈에 불려가겠나. 그 글을 쓴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어설프고 빈약하며 얄팍하고 멋도 없는 글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변변찮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사실 김칫국에 가깝다. 내가 자의식의 필터를 벗고 좀 더 공개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깨달음 덕이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일단 쓰자. 두려움은 순식간에 섭섭함이 될지 모른다.
어차피 금방 잊혀진다.
퍼블리에서 리포트를 발행했을 때 기억에 남는 혹평을 받은 적이 있다. 심장이 황급히 쥐어짠 피가 온몸을 휘젓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그때 마음은 '괜히 쓴다고 해가지고' 까지 갔다 왔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비슷하게 평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니 누가 쓴 글이었는지, 어떤 대목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그래서 댓글을 뭐라고 남겼던지, 전부 다 그다지 기억나지 않았다.
좋은 글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글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이모지 리액션을 남기는 걸로 모자라서 댓글까지 달았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느낌과 인상만 남아있지 글귀가 기억나는 경우는 드물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이유도 있지만, 그 정도로 명문일 확률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ㅋㅋ
It doesn't matter.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코미디언 중에 Adrian Bliss 라는 사람이 있다. 직접 만들었으리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는 희한한 의상으로 분장을 하고는 적혈구, 정자, 난자, 바이러스 등에 관한 코미디 스케치를 찍어서 올린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희귀한 소재와 설정이 너무나도 독창적이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발견 즉시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자신의 창작 과정에 대해 얘기한 영상을 올린 적 있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구상을 하고, 좀 쓰다가,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면서 좀 더 생각하고, 의상 준비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리고, 또 새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그러면서 중간에 여러 번, "It doesn't matter" 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런 설명도 보태지 않아서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의아했는데 영상이 끝나갈 때쯤 느낄 수 있었다. "Just do it"과 같은 말을 하려 했다는 것을.
별로인 단계 없이 잘하게 되는 법은 없다.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일주일 걸려 썼지만 아무래도 발행할 수 없어서 저장함에 일 년씩 묵혀두는 단계 없이 곧장 잘하게 되는 법은 없다. 결국엔 삽질과 현타와 수치심의 터널을 맨몸으로 뚫고 가야만 한다. 세상은 그런 걸 '성장 마인드셋'이라고 부른다. 성장 마인드셋의 핵심은 그 별로인 단계를 당연한 과정의 일부로 끌어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잘하게 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메타인지는 자기객관화에만 꺼내쓰고 실행 단계에는 고이 접어 넣어두자. 처음 시작할 때 필요한 건 머리 박고 꾸역꾸역 해나가는 미련함이지, 조감으로 내려다보며 자꾸만 점검하는 전략성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쓰고, 발행 버튼을 클릭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