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기회는 지금 디딘 발 밑에 있다

성장의 기회는 지금 디딘 발 밑에 있다
Photo by Levi Ventura / Unsplash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빌보드와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별의별 나라 사람들이 따라 부르고 춤추며 만든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여름 휴가 중에 아이랑 두 번째로 보니 확실히 노래가 많이 들어왔다. 영화 속 대사처럼 “catchy” 할 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괜찮고 가창은 말해뭐해.

꼬마는 완전히 빠졌다. 저녁마다 틀어놓고 태권도와 크럼프의 조합 같은 (자라나는 어린이의 관절 건강이 염려되는) 춤을 한 판씩 추는 게 루틴이 되자 나는 어느 저녁 후루룩 영어 원문 + 영어 발음의 한국어 표기 + 한국어 의미 조합의 가사 파일을 만들어줬다. 노래는 너무 좋은데, 너어무 따라 부르고 싶은데, 영어라서 부르질 못하는, 그 마음을 알아서다.


실제로 자기가 흥미와 관심을 많이 느끼는 대상을 특정 언어로 파는 건 훌륭한 외국어 공부법이다. <The 4-Hour Workweek>부터 <Tools of Titans>까지 자기계발 방법론을 전파한 팀 페리스, <기생충> 때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최성재 님도 같은 맥락의 얘길 했다. 외교관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현지어 능력을 빠르게 키운다고 들었다. 내 경우엔 노래, 배우, 스탠드업 코미디, 요가가 그런 대상이었다.

공부뿐만 아니라 뭐든 배우고 성장하려면 알맹이가 있어야 효과적이다. 목적이나 맥락이라 해도 좋겠다. 예를 들어 또 다른 최고의 외국어 학습법은 그 나라 말을 하는 사람과 사귀는 것이다. 이것을 성사를 시키려면 말을 해야지 어떻게 안 해. 이와 비슷하게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거나 그 나라에 살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관련 정보를 그 언어로밖에 구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명확한 목적과 맥락이 있으면 성장의 속도와 효과는 급상승한다.

이런 게 없으면 기술만 남는다. 목적이나 맥락 없이 배운 기술로서의 능력은 금세 생명을 다한다. 엑셀 쓸 일이 없는 사람의 엑셀 자격증, 영어 할 일이 없는 사람의 토익 점수, 데이터 다룰 일이 없는 사람의 데이터 분석 과정 수료증 같은 거다. 모바일 앱 개발을 배운다면 ‘차를 어디다 주차해놨는지 저장하고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앱’처럼 실제적인 맥락이 있어야 동기가 확실하고 그만큼 지식과 기술도 내 걸로 흡수되어 오래 남는다.


한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날 때까지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일을 가린 적이 있었다. 내게 주어진 기회는 석연찮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만 바라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나는 사실은 그 일을 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나 ‘할 줄 안다’는 수료증 같은 게 아니라 지금 디딘 현실의 맥락 속에서 하나씩 쌓아나가야만 정말로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실제 상황에서 직접 겪어보고, 그래서 살아있는 지식과 기술로 현실의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고용주는 그런 사람을 뽑는다.

가끔 그때의 나처럼 자신이 원하는 일이 원하는 모습으로 주어지길 바라는 사람을 본다. 예를 들어 나중에 매니저가 되고 싶기 때문에 자기가 매니지할 대상이 있거나 올라갈 매니저 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을 바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직접적인 기회가 아니더라도 매니저가 되는 데 필요한 능력들을 연습하고 훈련할 기회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본인이 이미 뛰어나거나 아직 부족한 능력을 매핑해오면 기회를 만들고 코칭해주겠다고 했다. 한동안 답이 없던 그는 막상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더니 머지않아 그 ‘기회’가 없다는 이유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퇴사를 결정했다.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면 직접 매니지하는 팀원과의 한층 더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없다. 인턴을 매니지해 본 이력이 있다고 해도 다음 고용주는 캐물을 거다. 그 매니지먼트의 실제가 어땠는지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맥락을 바탕으로 능력을 평가할 것이다. 매니저가 된다고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으므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대상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부터 갈고닦는 것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내가 디딘 현실이 내가 그리는 모습과 달라도 성장의 맥락은 찾을 수 있다. 만들 수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뜻밖의 히트가 다른 언어를 하면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수도 없이 그럴 듯하지 않은 맥락에서 만날 수 있다. 목적을 향한 관점과 의도와 해석이 있다면 그럴 듯하지 않은 구슬들도 보배로 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