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S25에서 관찰한 실전 발표의 기술
소위 ‘신의 직장’ 축에 끼던 첫 직장을 떠난 뒤, 새로운 길을 한창 탐색할 때 각종 톡, 챗, 밋업, 컨퍼런스를 찾아다녔다. 뉴욕에 살던 덕에 기회도 많았다. 그러다 퍼블리 초창기 참여를 시작으로 3년 연속 컨퍼런스 리포트를 내기도 했다.
최근 우리 회사 주최 MGS25 컨퍼런스에서 쟁쟁한 연사 분들의 발표를 들으며 인상깊을 때도 있었고 좀 아쉬울 때도 있었다. 중국에서 일하던 시절, Toastmasters International에 참여하며 전국 대회 2위를 두 번 한 적 있다. 3개월간 토너먼트를 거치는 동안 눈물 쏙 빠지게 피드백 들으며 멘탈 털리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발표의 기술을 공유해본다.
🚶 의도를 갖고 움직이자
무대에 서는 건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무대 위에 혼자 서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몸을 숨길 단상도 없다니!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몸을 좌우로 흔들거나 오락가락하는 연사들이 있다. 마침 디스플레이의 한 영역에 연사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는데, 배경의 발표 자료가 계속 왔다갔다해서 정신없었다.
이런 움직임은 소음과 비슷하다. 자극이 될 것 같지만 이상하게 지루함을 유발한다. 다 모르겠다면 그냥 한 자리에 발 붙이고 서서 가끔씩 제스처만 해주는 게 계속 흔드는 것보다 낫다.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그러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이야기라면 별 상관 없는 주제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링크드인 포스트 쓸 시간 순삭해가는 유튜브 숏츠들..) 발표 내용을 너무 많이 다듬어서 일반화하면 도리어 기억에 안 남는다. 실제 사례와 에피소드를 이야기처럼 풀자. 훨씬 생생하고 흥미롭다. 그리고 중요한 메시지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고구마 줄기 끝을 청중에게 쥐어줄 수 있다.
데이터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한 예술가는 자신의 TED 톡에서(https://lnkd.in/gYdY2BPT) 아주 웃기고 기묘한 팩트 하나를 언급하며 "이 컨퍼런스를 통틀어서 기억에 남는 건 이거 하나일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 팩트는 내 뇌리에 끈질기게 남아 이 포스트를 쓰는 동안 떠올랐다.
🎭 ‘사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자
가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임원진 발표하듯 정중하게 정돈된 말투로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하는 분들이 있다. 산업 컨퍼런스는 생생한 현장감이 더 어울린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느껴지게 썰을 풀듯 발표하는 연사에게 훨씬 호감이 가고 몰입도도 높아진다.
액티비전(Activision)의 한국계 미국인 Alexander Yoon은 한국에 처음 와본다며 어눌한 한국어로 "아버지가 하늘에서 진짜 자랑스러워 할 거에요. 너무 감사해요, 하고, 축하해요."라며 시작했다. 실제 사례에 자신의 관찰, 인사이트, 배운 점 등을 버무린 그의 발표는 여러모로 즐겁고 유익했다. 전문성과 신뢰감에 한 사람의 색깔을 씌워 전달하는 건 큰 매력이다.
🎯 듣는 사람한테 가치있는 정보를 주자
듣는 사람을 고려해 센스있게 내용을 구성한 알레프(Aleph) Hyunjin Oh 이사의 발표는 여러 측면에서 굉장히 인상깊었다. 페르소나 설정, 퍼널 분석, 채널 평가, A/B 테스팅 등 어찌 보면 기본적인 마케팅 방법론을 다뤘지만, 컨설팅 경험을 통해 파악한 실무 과정의 맹점들을 소주제별로 짚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서 유익했다. 마지막 1/4은 담당 중인 스냅챗 홍보였는데도 이질감이 별로 들지 않았다. 관련 분야의 관계자들에게 매력적일 내용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간혹 본인이 해야할 말 중심으로 이뤄진 발표 자료 하나로 여기저기서 발표하는 듯한 경우, 이 컨퍼런스랑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맥락과 청중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평소보다 조금 더 높고 빠르게
녹음이나 녹화를 해보면 알 수 있는데, 평소처럼 말하면 그렇게 쏙쏙 들리지 않는다. 평소보다 조금 더 높고 약간 더 빠르게 말하는 편이 전달력이 좋다. 기자나 아나운서가 토크쇼에서 편하게 말하다가 본업 시연할 때 달라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억양도 진폭을 평소보다 크게 하면 역동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 발표 자료는 다크모드로
요즘 디스플레이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 흰 바탕에 까만 글씨는 내용을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눈이 너무 부셨다. 어두운 바탕에 밝은 글씨를 추천한다.
💪 달달 외운 도입부로 자신있게 시작하자
마이크까지 차고 무대 뒤편에서 내 차례를 기다릴 때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심장이 목에서 뛰는 것만 같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닥치면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막판에는 도입부만 계속 연습한다. 도입부를 매끄럽고 자신있게 시작하면 마음이 좀 진정되면서 분위기를 타고 연습한 대로 얼추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끝나갈 때쯤 입이 풀리면 너무 아깝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