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물결에 그렇다고 손 놓고 살 것도 아니잖은가

AI 물결에 그렇다고 손 놓고 살 것도 아니잖은가
Photo by Silas Baisch / Unsplash

내가 링크드인에서 애정을 갖고 팔로우하는 사람 중에 Liz Fosslien이라는 사람이 있다. 손으로 그린 그림과 함께 올리는 포스트들이 심플하면서도 재치 있고 통찰력 넘쳐서 몇 년째 팔로우 중인데 볼 때마다 옅은 웃음이 번지면서 끄덕끄덕 공감하게 된다. 어쩐 일인지 한동안 내 피드에 안 보이더니 오랜만에 아래 포스트가 떠서 찬찬히 뜯어봤다.

  • 😓 AI 너무 많이 쓰는 거 같애 — 😧 더 써야 하는 건 아닐까
  • 😱 AI가 내 일을 대체할 거야 — 🙂‍↔️ 에이 그게 그렇게 쉽나
  • 🤩 AI 진짜 대박이다 — 😒 거품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몇 주 단위로 빅뉴스가 갱신되고 묘기 대행진이 피드를 점령하는 대혼란의 시대에 사람들이 AI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그네에 비유해서 정확하게 묘사했다. 모두가 느껴봤거나 지금도 느끼고 있을 감정들.

나와 동료들도 예외가 아니다. 꼼꼼하게 비판적으로 생각해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공감에 기반한 논리적 언어로 타인을 이해에 이르게 하는 게 라이터의 일인데, 많은 부분에서 AI가 훨씬 빠른 속도로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목격해 왔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이제 뭘 하지, 우린 이제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걸까, 하는 개인과 직무의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불안과 혼란을 나누는 대화가 오가곤 했다.

지난 주 월요일, 팀 지식 공유 세션에서 나는 <AI와 PW의 미래>라는 다소 거창하지만 사뭇 진지해지는 제목으로 내 생각을 공유했다. 나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불안과 혼란에 매몰되지 않고 건설적으로 진화할 방향을 함께 잡고 싶었다.


나는 신문물을 우호적으로 발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메신저가 나왔을 때도, MP3 플레이어가 나왔을 때도,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도 ‘저런 걸 굳이 써야 되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 쓰는 거 두고 보다가 느지막히 쓰기 시작한 편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신문물을 맞이하고 또 보내면서 나름대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 일단 뭔지는 알아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 모른 채로 막연히 배척하며 지연하기보다는 일단 알고 경험한 다음 거부해도 된다. 알지도 못하는 대상을 거부하는 건 지조나 철학보다는 선입견, 게으름, 고집에 가깝다.
  •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방법은 사실 별로 없다. 뒤처질까 두려워서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내가 싫어도 세상은 거대한 물결에 실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기어이 나아가고야 말 것이다. 그 물결이 나한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올라타는 편이 현명하다.

AI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스스로를 구별해 온 방식에 도전하는 기술인 만큼, 편의를 증진한 다른 기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충격을 안겨준다. 한동안 자려고 누우면 뒤숭숭해서 잠이 잘 안 올 만큼 깊은 불안과 혼란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된 데는 회사에서 참여한 AI Camp 덕이 크다.

모두가 AI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 AI 도구를 발 빠르게 익히고 멋진 프로젝트를 척척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시행착오를 토대로 노하우를 정리해서 전파하고 브랜드, 영향력, 돈을 얻는다. 우리는 그걸 보고 배우면 된다. ‘요즘 세상이 이렇다 하니 나는 뭘 해볼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대로 냉소적일 필요도 없다. 물론 AI는 비판적으로 경계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많은 기술이다. 그렇지만 그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AI 자체를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시점이 됐다. 미래에 대해 신중하게 주시하되 나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할 방법을 가늠하는 게 현명한 시기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게 뭘 뜻하는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지금 세상의 좌표 어디쯤에 있는지 정도는 생각해봐야 한다.

도구는 결국 다 다룰 줄 알게 될 거다. 스마트폰을 처음 쓸 때 나는 어플이 뭐고 스토어가 뭔지, 왜 스토어가 여러 개 있는 건지 이해하는 데 좀 걸렸다. 두 손으로 작은 화면을 잡고 뭔가를 조작하는 것도 답답했다. 지금은 지역과 연령, 사회적 배경을 가리지 않고 사용할 만큼 보편화됐다. 도구도, 도구를 다루는 기술도 계속 발전할 거다.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 ‘이제 인간은 프롬프트를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며 프롬프트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쏟아졌었다. 알다시피 이제 그런 노하우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 한창 쏟아지는 노하우들도 곧 그렇게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결국 핵심 능력과 역량이다. 자동화가 가능한 건 AI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사람에게 축적된 지식과 시스템이 있을 때 AI를 만나서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지식, 논리 관계, 맥락에 대한 암묵지, 직관과 감각으로 체화된 테크닉, 그리고 이것들을 협업 경험을 통해 기준과 규칙으로 수립한 시스템이 먼저 필요하다. 반대로 말해 기준과 규칙에 기반한 시스템이 미비하다면, 결국 자동화로 쉽고 빠르게 얻은 산출물의 품질에 한계를 느끼고 시스템부터 바로 세우는 지점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와서 앞서 썼어야 했던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달라지는 건 능력과 역량이 발휘되는 형태와 방식이다. 이제 사람은 작업 자체보다는 관리와 결정을 더 많이 하는 역할로 옮겨갈 것이다. 관리를 잘 하려면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고, 결정을 잘 하려면 판단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AI에게 뭘 시킬지를 알고, 그걸 언어로 지시하면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라이팅 직무는 비판적 사고, 분석적 사고, 개념과 정보를 언어화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으며 꺼내 쓰는 직무다. 이 모두가 AI를 잘 활용하는 데 핵심적인 것들이다. 그런 능력과 역량이 발휘되는 형태와 방식에 조정이 필요한 거지, 무의미하거나 무용해지는 게 아니다.

AGI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까지의 AI 기술은 ‘AI를 쓸 줄 모르면 도태되겠다’는 압박을 주지만, 진짜 큰 공포는 이 속도로 계속 발전했을 때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는 데 있다. 소위 스스로 생각하고 수행하는 AGI가 그 상상의 나래 끝에서 일렁이는 신기루인 듯하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로는 AGI에 대한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도 엇갈린다. 설령 기술이 탄생하더라도 온 세상이 쓰게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살 것도 아니잖은가. AGI의 도래가 3년 후가 될지 3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우리의 최선은 눈과 귀는 열어두되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 손으로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거 말고 더 좋은 수가 뭐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이어서 내가 생각하는 우리 팀의 미래를 제시했다. 작성 자체보다 무엇을 어떻게 작성할지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될 것이고, 실무보다 기준을 세우고 검토하고 평가하는 역할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이다. 이를 위해 Claude Code, Markdown + Git, VS Code를 활용하는 업무 환경을 갖추기로 합의했다.


얼마 전, 전 직장 동료의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육아 휴직에서 돌아와 나랑은 몇 달 정도만 함께 일하고 회사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된 Janice 라는 동료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떤 에피소드를 계기로 대화를 나눴고, 내가 잠깐 살았던 버지니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중에 싱가포르 가면 진짜로 연락할 거라며 헤어질 때 연락처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언젠가 링크드인에서 화가로 전향해서 AI를 그림 그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와, 전혀 다른 걸 하시는구나, 새로운 시도가 궁금하다, 정도로 기억하고 잊고 있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2주 전인가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타고 타고 가다가 본 게 알고 보니 그 분 작품이었다. ‘푸른’ 한국의 풍경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교차해 구현한,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고 보기에도 예쁜 작품들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광화문 신년 카운트다운에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고 🤯 Sick! Dope! Crazy! 너무 멋있다!

진화는 피할 수 없다. Janice의 경우처럼 시대에 반응하며 시작한 변화가 우리를 훨씬 더 나은 좌표로 데려갈 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비관적인 기분이 들 때면 (아이 옆에서 유튜브 보다가 알게 된) 심해아귀에 대해 알아보자. 조금쯤 나아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