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회고
2025년 상반기 평가를 위해 지난 반기에 한 일을 회고했다. 음력 설 전에, 1분기 안에, 하며 유예했던 데드라인들이 무색하게 언제 하반기가 다 됐다! 스타트업의 시간은 너무 빨라서 내가 뭘 이뤘던가 뾰족한 기억이 없는 것 같으면서 또 정리하고 나니 꽤 많은 일을 가열차게 했다 싶다.
작년 9월, 팀의 절반이 신규 입사자인 상황에 팀 리드로 합류해서 팀 빌딩부터 다시 하고, 인연 없던 마케팅 분야에 기능마저 복잡한 제품을 더듬더듬 익히고, 처음 해보는 유저 가이드 테크니컬 라이팅도 적응하고, 바쁘느라 무성하게 웃자라버린 프로세스도 정돈해 나갔다.
지난 반기는 더욱 능숙하고 빨라지면서 일상적 업무와 운영을 넘어 도약하는 데 필요한 밑작업을 펼쳤던 것 같다.
1️⃣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
라이팅은 실제 중요도와 전문성에 비해서 인정을 못 받는 직무다. 그래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해야 그나마 눈에 좀 띄는데 그런 일은 시간과 정성이 아주 많이 든다. 원래 하던 일을 하면서 그런 일도 해내려면 야근을 해야 하지만 프로세스를 효율화하면 불필요한 데 쓰는 자투리 시간을 줄여서 덩어리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작년에 파악하고 체감했던 것들을 올해 1, 2월에 붙들고 개선했다.
적게 클릭하고 많이 처리되는 프로세스를 좋아한다. 팀의 노션 워크스페이스를 완전히 바꿔서 작업-커뮤니케이션-관리 프로세스를 통합했다. 한 번 입력하면 그걸로 진행 상황도 파악하고, 피드백도 주고 받고, 다른 팀과 공유하고 최대한 다 할 수 있게 했다.
콘텐츠 관련 사내 요청 등록과 관리 프로세스도 슬랙의 워크플로우와 리스트를 활용해서 대폭 개선했다. 해보니 괜찮아서 팀내 리뷰 요청 프로세스도 비슷하게 만들었다. 알림도 줄고 찾아보기도 쉬워져서 팀원들의 체감 피로도가 낮아졌고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 전반적인 관리가 깔끔해졌다.
2️⃣ 팀 자체 기획 프로젝트
그렇게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가치 있는 일에 써야 제맛이다. 올해 8월에 기존의 시장 강자가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데, 거기에 대비하면 좋겠다 싶었다. 프로덕트 디비전 차원에서 다같이 움직이자고 하기는 힘들었지만, 핵심 기능인만큼 제품 언어와 유저 가이드를 자체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어 보였다. 그 일을 맡아주실 팀원을 한번에 설득하진 못했는데 재차 검토하며 설득하자 필요성을 납득한 후로는 일사천리로 추진해주셨다.
사용자가 볼 제품 정보를 설계하는 일의 임팩트는 VOC 대응에 있다고 생각해서 CS 디비전과 소통을 늘렸다. 전체 문의의 50%가 위에 언급한 핵심 기능과 관련됐다고 들었다. 그래서 사내 요청으로 올라온 적 있던 관련 플레이북을 (역시 같은 팀원과) 하나 만들었다. 제품 활용 꿀팁에 가까운 플레이북은 기본 사용법을 설명하는 유저 가이드와 성격이 달라서 구성과 표현도 사용자가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좀 더 열어놓고 선택했고 그 덕에 결과물도 잘 나왔다.
3️⃣ 확장을 위한 시도들
디자인에 디자인 시스템이 있다면 라이팅에는 콘텐츠 가이드라인이 있다. Google, Shopify, Atlassian 같은 큰 기업들은 보이스앤톤, 문법과 맞춤법부터 UI 컴포넌트와 포용적 언어까지 디자인 시스템 하위 콘텐츠 섹션에 정의하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 20개 넘는 레퍼런스를 검토하고 UI 컴포넌트 중심으로 수립했었는데 이번에는 기존에 수립돼있던 걸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완성되고 활용될 모습을 생각하면 이미 뿌듯하지만 작업은… 되다 되.
AI 봇도 몇 개 만들어봤다. 혼자 이리저리 써보다가 업무에 활용할 가능성이 많겠다는 걸 깨닫고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해서 정형화된 작업 과정 2개를 자동화했다. 실제 업무에 쓰면서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겠지만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지, 그래서 덩어리 시간을 얼마나 더 확보할 수 있을지 그려진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능력도 더 키워보자고 이런저런 학습과 시도를 해보고 있다. 구조가 복잡하고 모수가 작은 B2B 제품 데이터 분석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거라.
숫자로 보여주기도 어렵고 눈에 잘 띄는 종류는 아니지만, 단단한 기반이 되어 앞으로 두고두고 효용을 누릴 일들을 아직까지는 더 높은 비중으로 한 것 같다. (물론 팀 리드 포함 국문 담당 2명, 영문 담당 1명이 로드맵 티켓 30개를 모두 작업한 데 더해서 한 일들이다.)
라이팅은 사용자 경험 설계이자 브랜딩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건 필요할 때 갑자기 내놓을 수 없다는 거다. 평소에 쌓아두지 않으면 있는 척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당장은 눈에 덜 띄는 모양으로밖에 안 나올 걸 알아도 기회가 보이면 일단 비집고 하자는 주의다. 이걸 하면 뭐가 얼마나 달라지냐, 같은 생각을 좇으면 결국 할 만한 게 없어지기 때문에 하는 편이 안 하는 편보다 낫다고 믿고 한다. 그래야 다음에 ‘제대로 된’ 기회가 왔을 때 ‘그 다음’ 스텝을 해볼 수 있다.
하반기는 그간 탐색하고 확산했던 것들을 수렴하고 집중하면서 더 가시적이고 임팩트가 명확한 결과물을 내보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