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상반기, 그리고 팀 회고
운전하며 듣던 라디오에서 "올해 전반전은 어떠셨나요?" 묻는다. 내일이면 7월. 3분기. 2026년 하반기다. 심지어 하지도 지나서 낮은 이미 짧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언제, 어째서, 왜.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의 물살에 손날을 담그고, 회고가 필요한 타이밍. Product Writing 팀은 하반기부터 4개 스쿼드 소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2년 가까이 알뜰살뜰 빌딩해 온 팀이 스쿼드로 흩어져 들어가는 변화를 앞두고 그간의 히스토리까지 정리해 본다.
팀 빌딩 + 운영 기반 구축 (2024.9~2025.2)
입사 당시 팀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다시 모은 상황이라 팀 빌딩이 중요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어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 팀원들과 1:1도 충분히 하고, 출근 후나 회의 시작 전에 틈틈이 스몰톡도 건네고, 각자의 강점과 역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자주 피드백하며 힘을 실어줬다.
의견을 서로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마테크를 모르고 헬프센터도 처음이라서 작은 결정에도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모자랐다. 논의를 열고 의견을 묻고 질문도 많이 했다. 다들 이상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으니 서로가 가진 생각 편하게 주고 받았으면 해서 담백하면서 적절히 포장한 피드백을 자주 했다.
일하기 편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페이지와 DB 링크의 커다란 모음 같던 팀 워크스페이스를 PARA 기반 템플릿으로 갈아끼우고, 정보를 통합하고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꾸준히 개선했다. 페이지 속 페이지를 검색하는 대신 단일한 원천 DB를 다양한 뷰로 가공해 활용했다. 개인별 업무 가시성이 높아져서 공유를 위한 공유가 줄었고, 작업·논의·검수·관리가 한 곳에서 이뤄졌다.
새 부대에 새 술이 담겼으니 퀄리티의 기준을 설정하는 게 중요했다. UX 문구와 마케터 가이드, 이메일, 공지 등 팀이 작성하는 모든 콘텐츠의 국문과 영문을 전수 리뷰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어렵고 복잡한 제품이라 리뷰가 가독성 중심으로 제한됐다. 제품 지식을 빠르게 채우고자 모든 킥오프 미팅을 참관했다. 스타일가이드, 보이스앤톤, i18n 작업 도구, 마케터 가이드의 역할 등 업무 전반에 당면한 과제를 분석하고 팀 비전을 탐색했다.
VOC 대응 콘텐츠 강화 + 운영 고도화 (2025.2~2025.8)
운영 기반과 퀄리티 기준이 잡히고 난 후, 팀 논의와 리더십 의견을 종합해 다음 단계로 VOC 대응에 주력하기로 했다. 기본 가이드는 전반적으로 갖춰진 상태였고, 사용자 수요에 직접적으로 해답을 주는 효과성 높은 제품 콘텐츠에 주력할 때가 됐다는 데 중지가 모였다.
CS 디비전과 소통하며 고객 문의 패턴을 파악했더니 2개 영역에 50%가 넘는 문의가 집중되어 있었다. 8월 출시 예정이던 셀프 서비스 신규 플랜의 서비스 영역이기도 해서 관련 가이드의 정확성과 가독성을 대폭 개선했다. FE나 PD의 개입 없이 우리만 작업하면 할 수 있는 일은 팀 Project로 추진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조건 티켓으로 추진했어야 했는데 우리 팀만 별개로 돌아가는 구조적 사각지대를 원천적으로 탈출할 생각을 못 했다. 대신 담당 팀원을 Project Lead로 명시해서 자신의 기여에 자부심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결과도 널리 알리게 했다.
팀원들이 자신의 직무를 좀 더 구체화된 틀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우리 직무가 기여하는 영역을 7개 Area로 정의해서 모든 태스크에 부여하고, 전체 태스크의 영역별 비중을 차트로 시각화했다. 직무 핵심 역량도 6개 항목으로 정의해서 개인 목표의 기준으로 삼게 했다. 라이팅 직무의 중요성과 기여도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그런 일환으로 링크드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덩어리 시간이 있어야 깊게 생각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자잘하게 부서지는 시간을 줄여 나갔다. VOC나 CSM을 통해 연간 200건 넘게 쏟아지는 콘텐츠 개선 요청은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요청자의 기대와는 달리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긴 스레드에서 아묻따 팀 태그로 들어오던 요청에 틀을 세우고, 정보 확인부터 경과 공유까지 모든 과정을 일하기 편하게 바꿨다. 팀원들의 피로도가 낮아지고 처리율이 80%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서 뿌듯.
콘텐츠를 전수 리뷰하다 보니 퀄리티에 대한 기준을 일관된 표준으로 수립할 필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라이팅 가이드라인 수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AI 서비스별로 GPT/Project/Gem도 여럿 만들어 써보면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고 반복적인 작업에 투입하는 리소스를 줄여 나갔다.
데이터 기반 UX Writing과 사용자 조사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우선순위와 환경적 한계 때문에 큰 진전은 없었다. 뚜렷한 성과를 내고 싶지만 여전히 긴 호흡으로 필요한 기반을 다지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아직 선명하지 않아서 많은 일을 열심히 했다. 3월과 7월에 팀원의 퇴사와 이동이 있었다. 이제 안정됐나 싶으면 자꾸만 생기는 변화에 꽤나 지쳐갔다.
고가치 콘텐츠 기획 + 전문성 강화 (2025.8~2026.2)
팀원 교체와 함께 가속이 붙은 시기다. 영문 번역 전담 포지션을 없애고, 팀원 모두가 사용자 관점에서 제품 콘텐츠를 설계하는 라이터로 일하도록 했다. 사내에서 직무 전환한 새 팀원이 직무 역량을 단계적으로 쌓을 수 있도록 과제를 주고 온보딩시켰다. 이 트리링궐 팀원은 훗날 깔끔하고 현대적인 영문 콘텐츠의 시대를 연다.
팀 전원이 로드맵을 담당하며 가동률이 높아지자 사용자 수요가 높은 제품 콘텐츠 개선도 '요청 처리'에서 '기획'으로 진화했다. 팀에 가장 오래 근속한 팀원이 고질적으로 문의를 양산하던 콘텐츠들을 굵직굵직하게 개선해 나갔다. 문의가 많을 법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내용이 많았는데, 어떻게 원래 하던 일 다 하면서 도장깨기 하듯 해나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고 고맙다. 나도 그 노력이 빛나도록 꼼꼼하게 리뷰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 복잡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기존 구성과 스타일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빠듯한 리소스를 조금이라도 아껴서 이런 임팩트 높은 일에 집중하고자 프로세스를 더 빡세게 표준화했다. 매번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요했던 협업 유형에 대해 아주 상세한 협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스레드가 길어지기 전에 링크 하나 던지는 걸로 대체했다. 아, 그리고 (다음 시기의 핵심 자산이 되는) 라이팅 가이드라인이 드디어 나왔다!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원래 생각한 목차를 모두 갖춘 모습으로 결국 나와서 진짜 너무 기뻤음.
이 시기에는 각자의 성장을 통해 팀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 고객 경험(CX), 테크니컬 라이팅 등 다양한 전문 정보를 팀에 꾸준히 공급하며 한층 더 유기적인 관점에서 직무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ISO 26514 Systems and software engineering — Design and development of information for users 같은 국제 표준이나 운영 사례에 관심을 두고 스터디했다. 새 팀원은 안정적인 퀄리티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을 두루 관찰하며 지원했고, 기존 팀원은 사람들을 움직여서 기획하고 추진하는 시니어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독려했다.
일을 엄청 많이 해서 메마르고 씁쓸한 마음으로 연말연시를 맞았다. 그래도 1월의 불타는 바이브 코딩 끝에 1년을 미룬 블로그가 세상에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 주제들, 그리고 일을 통해 실제로 만든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마련한 작지만 중요한 디딤돌. 주제와 의도를 잘 함축하는 이름을 붙이고, 그간 여기저기 떠돌며 쓴 글을 모두 모았다.
AI 최적화 + 직무 정체성 전환 (2026.2~2026.6)
대격변의 시기. 두둥. 설 직후에 열린 AI 캠프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2026년 회사의 전략 목표가 1) 미국 시장 진출과 2) 셀프서비스 제품 기반 성장(PLG)으로 정의됐다. 미국 사용자들이 CSM 도움 없이 제품 내 AI 에이전트를 통해 제품에 안착할 수 있도록 콘텐츠의 대대적인 AI 최적화가 필요했다.
신규 사용자에게 가장 수요가 높을 핵심 가이드 80편을 선정했다. AI가 정보를 읽는 방식을 스터디하고 콘텐츠의 AI 최적화 규칙을 도출했다. 그동안 노션 페이지에 코멘트로 쌓인 리뷰 기록에서도 패턴과 규칙을 도출했다. 여기에 1년을 들여 수립한 라이팅 가이드라인까지 더해 Claude Code 스킬을 구성했다. /setup 부터 /analyze, /revise, /verify, /translate, /metadata 까지 전 과정을 human-in-the-loop 방식으로 구조화했다.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시리즈로 따로 다룰 예정이다.)
원래 하던 일에 더해 AI도 익히고 새로운 업무 방식도 수립하느라 이중삼중으로 힘들었다. 기대감에 부풀어 신나는 날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소모와 과부하에 시들어가던 날도 있었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업무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하는 건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팀 논의와 리더십 얼라인을 거쳐 우선순위를 과감하게 조정했다. 100의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의 종류를 더 큰 범위에서 썰어내고, 영문 콘텐츠는 영문 라이팅 가이드라인을 수립한 후 AI에 맡겼다. AI-Native 환경에 적합한 플랫폼으로 헬프센터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능숙하고 예리해진 판단력으로 큰 결정을 많이 했다.
대격변의 시기를 지나는 건 개인에게도 팀에게도 쉽지 않았다. 같은 시기를 지나는 같은 직무 동료로서 이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할지, 관점을 정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서 시작했다. 내가 먼저 익히고 시도한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든 생각과 감정을 가감없이 나눴다. 혼란과 무력감, 저항도 있었지만 시도를 반복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손잡고 자는 해달 무리처럼 이 파도 위에 함께 떠있다.
요즘 동료들이랑 대화하다가 이런 얘기를 반복한다.
— 내가 2년이 채 안 됐다.
— 거짓말하지 마라.
— 진짜다. 나 24년 9월에 왔다.
— 에이. 아닐 텐데?
— 진짜라니까. 2년 안 됐다.
— 그럴 리가. 훨씬 오래된 것 같은데.
— 나도 한 3년 넘은 느낌이다.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반기, 그러니까 7월부터 Product Writing 팀은 Product Content Design 챕터가 된다. 원래 우리 팀은 스쿼드에 속하지 않으면서 전방위 로드맵을 담당했는데, 스쿼드별 업무 방식이 점차 분화되며 팀에 부하가 가중되어 결단을 내렸다. 나도 팀 체제에서 져야 했던 매니징 부담을 줄이고 좀 더 깊어지고 싶었다.
Content Design은 2020년에 메타가 '이 직무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디자인'이라며 선언한 이래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주요하게 쓰이는 알려진 명칭이다. UX 설계 측면에 더해 AI 기반 시스템 설계라는 미래적 측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을 이제라도 갖게 된 것이다. Writing에 대한 좁은 인식을 깨려는 노력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새로운 챕터를 새롭게 써보자.
'디자인'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는 이번 결정은 우리로선 무척 자연스러운 선택입니다. 플로우를 구상하고 정보 구조를 짜는 것부터 디자인 컴포넌트에 꼭 맞는 표현을 짝짓는 것까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곧 디자인이었으니까요. 우리는 이 점을 좀 더 분명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우리의 역할과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고자 합니다.